먼저 꽤 철지난 글이지만 글하나를 스크랩 해보죠.

네 그유명한 팀로빈스의 랄프네이더를 지지한 이유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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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주당 외면하고 '진보적 독자후보'를 지지한 이유
영화 배우 - 팀 로빈스

편집자 주: 6월 중순에 팀 로빈스는 로스앤젤레스 시의 풀뿌리 운동을 재정 지원하는 리버티 힐 재단의 연례 만찬에서 연설했다. 본 재단은 그의 정치 참여적 영화 작품들과 운동가로서의 헌신을 인정해 그에게 업튼 싱클레어 상[업튼 싱클레어는 20세기 초에 미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사회주의 소설가이며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진보파 독자후보로 나서는 등 정치운동에도 나섰다]을 수여했다. 아래의 글은 그의 수상 연설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한 달 전에 뉴욕의 한 극장에서 저는 한 격앙된 노년의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들이 말하더군요. "이제 당신은 행복하겠군요."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까 궁금해하면서 제가 말했죠. "무슨 말씀이신지?" 그들의 답인즉, "당신의 네이더가 우리한테 부시를 안겨 주었지 않소." 지난 대선 이후 제가 성난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한 게 이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랄프 네이더를 지지한 것을 일종의 배신 혹은 모독, 헌법에다 오줌을 갈긴 것과 거의 마찬가지의 짓으로 여깁니다. 대선 전에 <뉴욕 타임즈>의 Op-Ed 란은 저와 수잔[팀 로빈스의 부인인 배우 수잔 새런든]을 공격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한 저명한 페미니스트로부터 우리의 네이더 지지를 야단치는 협박성 팩스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대선 일주일 전에는 헐리우드의 한 힘있는 거간꾼이 전화를 걸어 우리가 네이더를 만나 후보 사퇴를 권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거물의 말인즉, 네이더가 그렇게만 하면 녹색당에 1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줬죠, 어떤 전화도 그를 사퇴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개인적 영향과 협상의 정치가 통하지 않는다, 녹색당 역시 당신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요. 대선 후에 저는 한 유명한 배우가 네이더 지지자들을, 가난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리무진 자유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네이더를 지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료들과 사업상의 거래자들은 단호한 어투로 우리의 네이더 지지가 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나서 우리 애들 중 하나는 앞에 말한 헐리우드 거물로부터 공개적으로 야단을 맞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휘황찬란한 파티들에 초대받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자, 이 모든 소동은 다 뭡니까? 저 역시 과거에 모든 공화당원들은 다 악의 화신이라는 생각 하나로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를 결정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람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8년 전이라면 저 역시 저의 선택에 대해 이들과 똑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저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시애틀 투쟁 이후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수잔과 함께 IMF-세계은행 반대 시위로 워싱턴에 가서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5번가의 Gap 외곽에서 고착취 공장sweatshops에 반대하는 팜플렛을 나눠주는 13살짜리 꼬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클린턴 시기 민주당의 확고한 우경화를 목도하고 나서, 저는 전략적으로 투표하기보다는 저의 양심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요사이 뭔가 진짜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운동이 서서히 대학가를 사로잡고 있고, 유럽의 좌익 그룹들과 전 세계의 인권 그룹들 사이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1999년 시애틀 투쟁, 2000년 워싱턴에서의 IMF-세계은행 반대 투쟁, 그리고 기업들이 전 지구적 경제·환경 정책들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그 어디에서나 계속 벌어지고 있는 선동 활동들은 언론의 묘사와는 달리 일부 급진파와 무정부주의자들의 작업만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소수의 도당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결정이 지구의 미래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의 최전선임을 인식하고 있는 학생들, 환경운동가들, 노동조합들, 농민들, 과학자들, 그리고 기타 관심있는 시민들의 광범한 연합의 산물입니다. 

아직 유아기에 있는 이 운동은, 제가 보건대는, 노예제를 끝장내려 한 19세기 노예해방론자들만큼이나 도덕적인 호소력을 지닌 것이며, 작업장의 안전과 아동 노동의 종식을 주창한 1850년대의 노동운동가들만큼이 
나 중요한 것이고, 미국 시민들에게 산업 공해로 인한 환경 오염의 확산에 대해 처음으로 경고한 과학자들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운동들은 양대 정당 모두로부터 압도적으로 비난만 들었고, 언론으로부터 처음에는 무시되다가 이후에는 비난당했으며, 그 운동의 열성적 참여자들은 경찰과 여타 정부 요원으로부터 박해받고 구속당하고 때때로 살해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들의 끈질긴 투쟁 덕분에 지금 우리는 결국 이 나라에서 노예제를 종식하고 최저임금제, 사회보장제, 실업보험, 환경보험과 작업장 안전을 제공하는 그런 법들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 이뤄진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미국의 이러한 진보적 성취에 다년간 저항해온 과거와 다름없는 그 기업 정신으로 인해, 아동 노동과 노예 노동이 되살아나는 것을, 위험한 노동 조건이 되살아나는 것을, 제3세계에서 고착취 공장과 환경 파괴가 되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기업들은 이윤 마진과 경제 성장을 좇기 위해 전 지구 경제로 진출했고, 모든 쟁점들에 대해 1850년대로의 복고를 추진해왔습니다. 우리는 NAFTA, GATT, 그리고 WTO가 보장하는 자유 무역과 보호정책의 지원과 독려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른 나라들에 이식시켰습니다. 한창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의 공식 저널들의 지면에는 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리에서 이러한 진실이 외쳐지고 있고, 시위대의 주장들 속에는 반박할 수 없는 도덕적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랄프 네이더는 이런 쟁점들에 대해 말한 유일한 대선 후보였고, 이러한 새로운 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잔과 제가 그에게 투표한 이유입니다. 

작년 대선은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던져주었습니다. 부시의 간발의 승리는 이 나라 선거판의 부패와 기만, 불법성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초현실주의적이고 우스운 사건은 피델 카스트로가 우리에게 선거 감시단 파견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플로리다의 유권자 기만 외에도 다년간 계속돼온 인종주의적 선거 관행이 잠시나마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소로 가는 길 위에서 흔히 발견하는 노상장애물이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선거인명부 누락이든, 저소득 투표구에서의 비효율적인 구닥다리 검표기든, 양대 정당의 정치 기구일 뿐이라는 게 폭로된 대법원이든, 결국 다 한 가지입니다. 미국 지배계급의 힘센 무리들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합니다. 

물론 과거에 저는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악한" 공화당원들이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대선이 끝나고 나서, 그리고 우리의 네이더 지지에 대한 반응을 경험하고 나서, 저는 슬픈 깨달음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민주당원들 역시도 그런 무리의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할 뿐 아니라, 민주당 엘리트 중의 다수는 이상주의를 두려워합니다. 만약 완전히 경멸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저는, 당내 진보파를 견책하는 그런 당, 기층 당원의 이견을 용인하지 않고 지난 50년간 소비자운동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지도자였던 사람[네이더]를 악마로 만들려 한 그런 당을 바라보며 존경심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결코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에 이 나라에서 또 다른 지도자, 업튼 싱클레어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에도 비슷한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힘센 거간꾼들은 그를 고립시키기 위해 별 짓들을 다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를 지지했다면, 그건 건성으로 그런 것이었을 따름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싱클레어를 지지하느니 차라리 공화당 후보인 프랭크 메리암을 지지하는 쪽을 택하기도 했지요. 언론은 또 어땠습니까? 이들은 그가 반기업적이고 독선적이라며 악마화했습니다. 지금도 낯설지 않은 말들 아닙니까? [동일한 어구로 미국의 언론은 네이더를 비난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네이더 지지자들은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에 그들의 온 삶을 바친 그런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다양한 논쟁점들을 둘러싼 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 참여는, 이들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존경받을 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종식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세대에서 흔히 보이는 훈계하고 생색내는 태도는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빌 클린턴이 그 세대가 낳을 수 있었던 최상의 인물이라는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저는 이들 진보파에게 여전히 잠재력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들은 자신들 주위에서 성장해가고 있는 새로운 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저는 부당한 전쟁에 저항했던 베트남 시대의 아이들이 생명 보존 이상의 관심사를 지니고 있었다고, 전쟁터에서 제 목숨을 잃길 바라지 않는 것 이상의 관심사를 지니고 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성(性)이 고착취 공장 노동자 중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지, 어떤 성(性)이 노예 거래 대상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지 인식하고 있다면-- 이러한 관심사를 인식할 것이라고, 낙태의 권리만을 대선 후보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바라보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좀더 높은 이상, 전 세계와 연관된 이상이 우리 모두를 이끌어줄 것을 믿고 싶습니다. 

기업의 정치 헌금을 이유로 지구의 미래를 타협하려 하지 않는 그런 대안적 정당을 추구하는 데 힘을 합쳐온 젊은이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우리 시대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하나로 연합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운동은 저 익숙한 정치에 대한 거부입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응을 생각해보기만 하면 이러한 거부가 얼마나 엄청난 함의를 지닌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 부모와 똑같이 돼버린 겁니까? 이제 우리가 기득권 세력입니까? 이제 우리가, 이상과 꿈을 냉소적으로 거부하고 이상주의자가 선거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고, 전략적으로 투표해야 한다고, 우리는 우리의 꿈을 감당할 수 없다고,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성 세대가 돼버린 겁니까? 극장 앞의 부부, Op-Ed란 칼럼니스트, 헐리우드 거물, 그리고 앞에서 말한 그 배우 등등은 4년마다 자신들의 후보를 위해 북을 두드려 대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당이 집권하면 문명이 붕괴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 결혼을 지지하는 후안무치한 후보에게는 투표할 수 없다는 Op- 
Ed의 게이 칼럼니스트이고, 이게 바로 공화당이 장악한 백악관에서는 개인 시사회와 숙박의 기회를 얻을 수 없게 될 헐리우드 거물이고, 이게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파업 투쟁을 통해 당당히 일어서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면서 이들을 염려하는 데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는 저 배우입니다. 

저는 이불 속 활동가는 존경하지 않습니다. 저는 Gap 외곽에서 본 비타협적인 꼬마들을 존경합니다. 저는 그들의 이상주의, 열정, 비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습니다. 중도주의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저 민주당에 그들의 고결함을 타협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형을 지지하고 복지제도를 흔들면서 기업 복지를 늘리고 노동운동의 핵심을 갈가리 찢어놓는 경제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조력하는 저 민주당에 말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치적 용기의 권화가 버몬트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공화당에서 탈당함으로써 상원 내의 다수당을 바꿔 놓은 공화당 의원]이라는 것은 수많은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정치적 제휴 문제를 두고 사람들을 악마로 몰아대는 것은 중단할 때가, 양심의 소리를 좇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희생한 사람의 선례를 추구할 때가 된 듯합니다. 저 익숙한 정치를 거부하고 우리의 풀뿌리 민중의 가슴을 따를 때가, 가망없을 것 같은 곳에서 동맹을 형성할 때가 말입니다. 

이는 정의를 위한 기나긴 투쟁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낳는 것은 바로 풀뿌리 운동들입니다. 어떤 풀뿌리 운동도 자신의 이상을 타협할 여지는 없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워싱턴의 칵테일 파티나 백악관의 링컨실에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는 벅차고 힘든 작업이며, 쉴 세 없는 선동을 요구합니다.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백년 이상이 걸렸고, 아동 노동을 종식시키는 데 백년 이상이 걸렸으며,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는 데 백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 운동은 아직 유아기 상태에 있지만, 생동감에 넘쳐 있고, 결코 그냥 사라질 운명이 아닙니다. 그 문은 여러분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는 넘어서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문지방이지만, 결정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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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예전에 복사해논 글이라 어디서 퍼왔는질 잊어버려서 출처를 적지못한걸 이해해주세요.

어쨌든 또다시 선거철이 돌아왔고 저같은 나일론 진보지지자에겐 커다란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커밍아웃을 하자면 전 처음으로 투표권을 선사했던 2002년 대선 이후로 계속해서 '소신투표'를 해왔습니다. 물론 2002년 투표에서 노무현을 뽑은 것. 그리고 노무현이 과연 진보인가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고 싶지않아요. 다만 지금 대선이 벌어지고  그 당시 후보들이 그대로 나왔다라고 과정한다면 노무현을 뽑았을것인가에 대해서는 꽤나 많은 고민을 했을꺼 같습니다. 그러나 확실한건 그 당시에 전 '소신투표'를 했다라는 것이지요. 전 사실 제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리버럴에 좀 더 가까운 얼치기 진보주의자정도로 보죠. 그렇기에 저같이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이들은 선거철마다 고민이 많습니다. 지방선가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명부제가 도입되면서 그나마 지지정당에 대한 부분은 확실하게 '진보신당'으로 굳혔습니다만 국회의원이나 지자제 자치장 선거에선 어떤 인물을 찍을지 섣불리 결정하긴 어려워요. 물론 대부분 제가 모르는 인물들이 나왔을땐 확실히 진보신당에 투표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진보신당을 지지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다행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 서울이나 경기지역쪽에 속해 있지 않아서 온전히 100% 제 소신투표를 할 수 있을꺼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은 사실 별로 없었어요. 근데 어제 심상정의 단일화합의로 인해 갑자기 이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꽤나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사태에 대한 논란이 생기고 진보신당지지자들과 대야당통합을 주장했던 민주당파,노무현지지자들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건 압니다.. 전 꽤나 중립적인 쪽에 속해있지만 이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내심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한 심정이에요. 진보신당 지지자도 아니면서 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건 좀 아닌거같긴 하지만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만약 심상정이 대통합에 합의를 한다면 심상정을 버려야한다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쏟아내고 있고 그것에 관해서 좀 씁쓸하게 생각해요.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부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주장과 현실에서의 괴리가 절 헷갈리게 해요. 진보신당 지지자들은 인물보단 당 혹은 시스템이 먼저이기에 과감하고 엄격하게 심상정에 대해 다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히자만 현실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의 인물파워를 빼면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은 정말 미약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것 역시 묵묵히 감내할 수 있을정도로 대단한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지만요. 하지만 전 진보신당이 조금더 자신들을 알리고 현실적인 힘을 기르길 원하기에 그래서 이번 사태가 안타깝습니다. 전 사실 진보신당이 야당 통합에 반대하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데 대해서 반대하고 싶진 않았어요. 어짜피 이번 선거에서 이길수 있는 싸움은 이기고 지는 싸움은 질꺼라 봤기 때문이죠. 물론 속으로 내심 합쳐진다면 가능성이 조금은 늘지않을까 생각은 해봤지만 그냥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사태가 있기전 대의에 의한 통합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일부 민주당,노무현지지자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선거전에 팀로빈스에 대한 글을 올려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소신투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하지만 지금의 선거양상에서 결국 심상정은 항복선언을 해버렸고 사태가 조금 안타깝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건너편에서 불구경하는 입장에서 괜히 참견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진보신당 지지자든 민주당,노무현파의 지지자든 조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거뒀으면 하는 바램이 드네요. 전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을 그렇게 신봉하지도않고 우스꽝스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태를 보고 이러한 자조섞인 말들이 쏟아질게 분명해요. 분명히 그게 아님에도 반박하지 못하는 답답한 사태가 벌어지는건 아닌가 점점 안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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