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모습과는 상관없이 언젠가 했어야 할 정리.

폰 속에 묻어둿던 사진들을 보며 기억의 퍼즐들을 맞춰나가다.


1.  



출국일의 하루전, 허락받지 않은 서울에서의 하루를 지냈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나를 알던 몇명의 친구들은 환송회를 겸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생일케익도 없고 긴장한 덕분에 제대로 뭔갈 먹지도 못했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이들이 있다라는것만으로도 행복.

사람이 가장 나쁠때 떠나지 않는 친구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들이 그럴지도.

고마워. L군. S양 둘.P양.K선배. 그리고 그날 친구가 된 L양도.


떠나기전 마지막 밤, 그리고 돌아온 첫날의 밤의 시작과 끝의 기억은

공항과 가깝다라는 이유 하나로 온갖 친절을 베풀어준 S양과의 심야영화 관람.


사진은 태국 방콕의 터미널21이라는 쇼핑몰천장에 붙어있던 다나 홍보포스터.




첫째 날


모든게 새로웠고 긴장의 연속이었던 하루. 타이항공의 기내식은 소문대로(?) 맛이없음 -_-

홍콩을 경유한 덕에 거의 7-8시간만에 방콕 공항에 도착.

거기서 하나 기억났던건 공항 출국심사대에서 방콕과 치앙마이 부근으로 가는 이들로 나녔는데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치앙마이로 가는 배낭객이었다라는것.

그냥 그때는 진짜 여행을 떠난 그들이 마냥 부러웠다.


첫째 날은 정말 계속해서 긴장의 연속이었다.

낯선이들의 시선을 견뎌내는 일.

그런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나 오래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그 모든것이 나에겐 부담이었다.

입국 수속을 밟을때 여권과 내 얼굴을 대조하던 공항 직원의 심드렁한 얼굴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공항에 마중나왔던 병원의 운전기사 아저씨의 첫 인상을 보고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호텔 프론트직원과의 만남을 끝낸후 방안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의 안정을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공간은 달랐지만 방안만이 안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건 여전히 그때는 내 자신이 여전히

예전의 나의 히키코모리적 습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꺼다.



호텔방은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아담하고 예뻤다.



도착하고 짐을 풀고 다시 호텔에 나왔을땐 어느새 저녁이 됨.



사실 난 이것이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수술전 주어진 이틀에 대해서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수술이 끝난후엔 더이상 방콕 구경을 하지 못할꺼 같단 생각이 들었고 그제서야 휴대폰으로 방콕

여행 정보들을 뒤지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첫날 밤의 미션은 이러했다.

방콕 시내로 나가서 맛있으면서 수술이후 먹지 못할 음식을 먹어보는 것.


호텔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첫 날 저녁무렵의 방콕은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습하고 더웠었다.

BTS 역이 어딘지도 몰랐고 지하철에 대한 인상이 뉴욕의 지하철을 상상했기에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한 삼십분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체 걷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시암 스퀘어로 향했다.

-여담이지만 방콕에서 러시아워시간에 택시를 타고 가는건 바보같은 행동이다. 지하철을 타면

20바트정도만 내고 더 빨리 갈 거리를 무려 40-50분 걸려 100바트 가까운돈을 내버렸으니 -_--


내가 찾아 간 곳은 란쏨땀누아. 방콕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대중 음식점.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은편.

다만 위치 자체가 번화가안에 할렘가 느낌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서 첫인상엔 혼자들어가기 살짝 부담스러웠음.

내가 갔을때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혼자갔기에 빨리 들어간편.


교촌 치킨 맛이 살짝 나는 닭튀김요리. 방콕에서 먹은 음식중에 베스트중의 하나.

사실 이 음식점 이름처럼 이 닭요리-카이양-은 쏨땀이라는 태국식 샐러드와 먹어야 제맛이지만

첫날 방콕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내가 그런걸 알리 없으니...


그리고 이건 메뉴판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길래 밥대신 시킨 요리. 당연히 이름은 모름.

메뉴판 사진으론 볶음밥 종류의 음식인 지알았지만 그냥 닭요리같음. 태국 요리에 주로 들어가는

향신료 맛이 너무 강해서 시켜놓고 후회한 음식.



쏨땀누아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암 스퀘어를 잠깐 둘러볼려고 했으나 이미 시간은 거의 8시가 넘었기에

그냥 호텔로 돌아오기로 했다. 갈때 극악의 교통체증을 경험했기에 무섭더라도 지하철을 타보기로 결정.

그리고 그날 지하철안에서 현지 태국 소녀를 한명 만났는데 내가 태국에서 만났던 여자들중에 가장 청순하고

예뻤다. 엄마와 손을 잡고 탔기에 처음엔 중 고생인줄 알았는데 나이는 20살. 대학생이란다. 

-뭐 태국 여대생들이 교복을 입는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동안이었기에-


사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너무 예뻐서 몇번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쳤는데 그 소녀도 쑥쓰러워서 말을 하지 않다가

어느순간 눈이 마주쳤고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고 영어로 물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기에 그녀는 K팝을 좋아하고

슈퍼주니어의 팬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우릴 보고 웃는 동안 그녀는 대화를 이어갔다.

자신은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1년전에도 한국에 간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얼마나 있을꺼고 뭐때문에 방콕에

왔는지 이런저런것들을 물어왔다. 지금와서 가장 후회되는건 그때까지도 여전히 낯선이를 두려워하던 나였기에

연락처를 물어본다거나 사진을 남기거나 하는걸 하지못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혼자왔다기에 그녀는 대단하다듯이 

칭찬을 하다가 자신들의 목적지에 다다르자 홀연히 사라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게 낯선 방콕이라는 도시의 첫인상

이되었고 그렇게 어느덧 방콕이라는 도시가 점점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단, 그 무덥고 습한 날씨만 제외하고는.



병원에 가기전 하루전날, 정신없이 스케쥴에 맞춰 돌아다니다 오후쯤 호텔로 돌아왔지만 수술 하루전날은 금식이었기에 마땅히 갈곳이 없었다. 이날 마지막 먹은 음식은 호텔 룸서비스로 먹은 닭고기 스프. 그런데 이 닭고기 스프가 다음날 수술에 영향을 미칠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불길한 징조는 장액을 비우는 액을 먹을때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500ml를 마시는데 성공했지만 두번째 500ml를 도저히 마시지 못하고 결국 게워내고 말았다. 연락책이었던 병원직원인 Jessie에게 전화를 했고 제시는 안심하라는 말과 함께 콜라를 먹어보란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간신히 장액을 마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화장실에서의 몇번의 사투를 마치고 몸과 정신은 지칠대로 지쳐갔지만 잠은 오지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주에서의 마지막삶이라는 영화에 도마뱀이 벽을 기어나오는 장면이 생각났다.

마침 호텔에 있을때 장마기간에 도마뱀한마리가 들어왔고 그날 최대한 접사를 해서 찍어봤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수술 당일날, 기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금식에 물조차 마시지 못했고 장을 비우는 액체와의 사투덕분에 몸은 약간 지친 느낌. 수술후 돌아올 1인 병실에 앉아 조용히 수술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묵었던 호텔방보다 컸던 병실 사진. 시설이 꽤나 좋았다.


병원 밖 정경.


전날 묵었던 음식땜에 장에 트러블이 생겼다라는 이야기를 일본에 있던 코디네이터 Masa상으로부터 듣게되었다.

그렇게 수술 시간이 약간 늦춰졌지만 다행히 수술은 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오후 2시무렵에

수술실로 옮겨갔다.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던 닥터를 만났고 걱정된 난 내 장의 컨디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괜찮다고 그랬고 모든게 잘될꺼야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게 수술전 내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때 시간은 아마 대강 저녁 8시무렵이었던거같다. 배 부근이 땡겼지만

처음 든 느낌은 너무나 행복하다라는 감정이었다.

수술 부위는 마치 깁스를 댄거처럼 두꺼운 의료용 붕대로 묶여있었지만, 그래서 볼수는 없었지만 

그냥 알꺼 같았다. 나에게 존재했던 그 불쾌함을 느끼게 해준 이물이 사라졌다라는 것을...


병원에서의  생활은 고통과의 사투였다기보단 먹는것과의 사투였다.

수술전 장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것 때문인지 난 제대로 뭔갈 먹지못했고

병원에서 주는 스프같은것을 먹음 구토를 하곤했다.

그래서 3-4일간은 계속해서 오렌지 쥬스만을 먹고 연명했던거같다.

다만 고통에 대해선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덕분에 진통주사도 거의 맞질 않았던 것 같다.


4박5일의 병원에서의 시간이후 퇴원의 시간이 다가왔고 수술전부터 호텔로 트랜스퍼했지만 

여전히 장 컨디션은 좋지못했다. 

그리고 며칠간 계쏙 수프만 먹으라는 닥터의 지시가 있었기에 더욱더 힘든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호텔로 옮겨온 며칠동안은 호텔안에서 폰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태국어가 흘러나오는

티비를 보고 지냈다.


TV채널은 거의 MTV를 틀어놓았는데 어느날 잠깐 애니메이션 채널을 보다가 이걸 보게됐다.

겨울연가의 애니메이션판.-_-



마지막으로 이때 정말 힘든 시기에 나를 견디게 해준건 같은날에 성형수술을 하러 왔던  Christine덕분이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인으로 40대중반의 MTF 트렌스젠더였고 얼굴 성형만을 하러왔기에 내가 호텔로 트렌스퍼해서 

다시 만났을 무렵엔 방콕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안부와 수술경과를 물어왔고 내가 무얼 먹고싶은지

뭐가 힘든지를 얘기하자 스프대신 먹을것들과 음료수,과자같은것들을 잔뜩 사다주고 다음날 떠나버렸다.


물론  그 이후에도 그녀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고 지금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그 혹은 weird한 드랙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자신의 홈으로 돌아가면 나처럼 다른 사람이 된다고 자책했다.

그녀가 방콕에서 봤던 그 자신감 넘치고 유머러스함을 계속 유지할수 있었음 좋겠다.


그렇게 내가 가장 외로웠고 힘들었던 시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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